절대가운의 무시무시한 힘

내가 흰 가운의 힘을 무서워하게 된 것은 공중보건의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27살이었던 나는 짧은 머리를 한채 배낭을 메고 보건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건소 안에서는 (다른 의사들보다) 친절하고 겸손한 의사라며 환자들과 여사님들에게 칭찬을 잔뜩 들으면서도 “아유, 아니에요 아니에요” 를 연발하며 나온 참이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던 내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아저씨, 여기서 의정부역 가려면 몇 번 타야 되나요?"

아, 아저씨?
나는 질문 내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귀를 거쳐 뇌에 들어와 박힌 “저기, 아저씨-” 라는 호칭이 너무나 생소하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 마음이 사라지기도 전에, 진심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며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누가 봐도 학생 또는 아저씨처럼 보이는 사람인걸, 뒤통수에 “의사” 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로 욱-하다니. 그럼 “아니 누굴 보고 아저씨래, 내가 이래뵈도 의사란 말입니다!” 라고 말해야 하고, 그런 나를 다시 본 그 분이 “아유 선생님 제가 그만 실례를 했습니다. 그럼 저, 선생님 여기에서 의정부 가려면…” 하고 공손하게 다시 질문을 해야 옳았단 말인가?

내 불편함이나 거북함이 정말 치졸하고 유치한, 부끄러운 마음에서부터 나온 것임을 스스로 부정할 수 없었기에, 그동안 착한 척 겸손한 척 하며 스스로에게감춰왔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 같았다.

가운을 입고 의사로 살기 시작한 지 불과 얼마만에 이렇게 되다니.
흰 가운의 힘은 정말 무서웠고, 내 자아는 너무나 약했다.

흰 가운으로 상징되는 의사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나를 뒤덮고 내 별 것 아닌 실체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꼈고, 이건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경계해도 쉽게 이겨 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8년간, 흰 가운을 일부러 멀리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 이후로도 여전히 일정 수준의 “착한 의사” 가면 속에 살아 왔다.

그리고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요양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도, 가운을 되도록 입지 않고 싶었다. 다시 흰 가운의 무서운 힘에 사로잡힐까 두렵기도 했고, 어짜피 의사가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병원에서 조금만 지나면 의사로서 기능하는 것으로 인정받으면 되는거지, 의사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불과 며칠이 지나면서, 난 흰가운을 늘 입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르신들은 흰 가운을 입은 “의사선생님” 을 너무나 보고 싶어 했고, 어린데다가 더 어리고 어수룩해 보이는 내 모습은 어르신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엔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시 입은 흰 가운은, 내 기억대로 정말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했다.
절대반지처럼, 절대가운이라면 적절한 비유일 정도로.

흰 가운을 입은 나를 보는 어르신들은 무조건 고맙다고 하셨고, 내가 손을 잡아 드리고 웃어 드리고 괜찮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위로를 얻으시는 일이 많았다. 간호사선생님들이 이야기하는 건 아무리 합리적인 내용이라도 안 들으려 하다가, 흰 가운을 입은 내가 다가가 점잖게 몇 마디 하면 기가 죽어서 들으시는 일도 많았다. (어르신들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나는 어르신들사이에 다툼이나 문제가 있을 때 “그러시면 안된다” 고 훈계를 할 수 있었고, 내가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병원 내에서 많은 순기능으로 작용했다.

전보다는 좀 더 세상 풍파를 많이 겪으며 고생도 하고, 내 자신을 좀 더 돌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아주 조금은) 스스로를 후하게 평가하고 있던 나인지라, 이 곳에서 느끼는 절대가운의 긍정적인 마법을 전보다는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이 생각이란 얼마나 안일한 것이었던지…조금 전의 일로, 내 이런 생각은 무참히 깨졌다.

조금전,

복도에는 재활 운동 겸 레크리에션 활동을 마친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TV를 보고 있었고, 나는 병동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귀에 익은 큰 목소리가 들렸다.

일전에 뇌경색의 후유증으로 몸을 잘 못 움직이고 실어증이 있는 A 할아버지를 향해 “저건 병신이여, 아무것도 못해, 가망 없어, 암” 이라고 손가락질하던 그 할아버지였다.

그 분은 오랜만에 레크리에이션에 참여하기 위해 휠체어에 앉은 채 나와 있던 A 할아버지를 손가락질하며 소파 옆자리에 앉은 다른 할아버지에게 “저거 손도 다 꼬부라져서 혼자 움직이지도 못해, 어림없어, 혼자 아무 데도 못가, 벼 병신이라서..”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계셨다.

인지 능력이 저하되어 있는 사람도 자신에게 향하는 감정을 느끼고 그에 대해 나름의 반응을 한다. A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그 쪽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내 눈에 들어온 A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나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비통함을 느꼈다.

처음엔 일을 계속 하려 했지만, 계속 들리는 그 큰 목소리를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다.

복도로 걸어나가,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이 할아버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저한테,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런데 또 그러시면 어떻게 해요. 저 분 다 들으시고 속상해 하신다니까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주변 어르신들의 시선은 집중되었고, 할아버지는 이 상황에 대해 무척 당황하고 부끄러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연신 껌뻑이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유, 그럼, 그럼. 음…안 그러지, 나는” 이라고 말하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시고, 방에서 말하는 것도 다 들리냐, 면서 말을 돌리시기까지 했다.

나는 지지 않고 계속 몰아 세웠다.

"방에서 말씀하시는 건 저희한테 안 들려요. 하지만 방에서도 이렇게 하신다는 건 다른 분들이 말해주셔서 다 알고 있었어요. 근데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저 분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셔놓고 지금 또 그러신 거 말씀드리는거잖아요"

급기야 할아버지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아아 아이 나 나는 안 그러지, 음, 안그랬어” 라고 둘러댔고, 나는 이에 질세라 “안그러시긴요, 제가 저기서 일하다가 다 듣고 나왔는데” 라고 받아쳤다.

소파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분도 “그래, 그렇게 하는 거 아니래잖아” 라고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고, (그 말소리가 다 들리진 않으셨겠지만) 할아버지는 점점 더 부끄러워하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내가 뭐, 나 나쁜 마음으로 그러는 것도 아니고..그냥 그 그렇다는건데…”

그렇게 말하는 불안한 할아버지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던 나는, 나는 할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입을 더 귀에 가까이 대며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나쁜 마음으로 그러시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는거에요. 나쁜 마음으로 그러신거라고 생각했다면 화를 내면서 훨씬 더 뭐라고 했겠죠.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말을 마친 나는 다시 할아버지의 눈을 응시하며 의미심장하게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동으로 걸어가기 위해 돌아섰다.

아, A 할아버지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멋적은 표정으로 눈인사를 하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던 내게 A 할아버지는 갑자기 손을 내밀었고, 엉겁결에 그 내민 손을 잡으니 내 눈을 바라보며 힘을 지긋이 주었다.

(얼핏) 무척 감동적인 일이었지만, 그 손의 힘이 내 마음에 들어 온 것 처럼 마음이 답답해지고 머리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전처럼 흰 가운의 절대적 힘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그 힘을 잘 이용해 정의를 세우고 약자를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절대로 어르신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내게 향하는 과도한 존중을 거부하는 겸손한 의사니까. 아니, 그러려고 매 순간 노력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니까.

흥, 우습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훈계는 어른이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일이고, 망신을 주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는 어린 사람이지만 공개된 자리에서 할아버지의 잘못을 지적하며 망신을 주었다.

어떤 대단한 힘이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
흰 가운의 힘이다. 무시무시하다.

처음 만난 어른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그렇게 하면 칭찬을 받는다.

존중이든, 권위에 대한 인정이든,

가운이 가지는 절대적인 힘은 나의 인격이나 성품과는 무관하게 내 실체를 덮어 버린다. 엄밀히 말하면 가운을 입은 내게 향하는 존중과 권위에의 인정은 내가 아니라
가운 자체를 향하는 것인데 내가 그것을 망각하는 순간 내 자신을 잃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당직을 서다가 호출이 오면 가운을 입고 올라가는 일이 점차 많아지고, 보호자 면담을 할 때는 반드시 가운을 입고 가며, 보호자와 전화로 이야기를 할 때도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 거듭 내가 의사임을 강조하며 강하게 이야기를 하던 최근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이건 참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절대반지를 끼우면 얻게 되는 힘에 이끌려 결국 반지의 노예가 되어 버리듯, 나는 절대가운의 달콤한 마력에 빠진 채, 마치 내가 그 힘을 얻은 양 착각하며 가운의 힘에 점차 의존하고 그 뒤에 숨어 내 자신을 돌아보지 않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단 의사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 관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내가 원하는 의사의 사회적 모습은, 흰 가운에 씌워진 사회적 존중에 숨거나 부합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흰 가운을 벗고 한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능력과 성실성, 성품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인간이 서로를 인간 그자체로만 바라보며편견없이 대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까지 확대할 필요도 없다. 나라는 약한 인간은 늘 인간을 차별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하고,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공포를 느낀 순간만큼이라도 다시 다짐해 본다.

나를 찾지도 못한 채 절대 가운에 흡수되어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되어 살아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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