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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쉽게 이해한 듯 단정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 인생 모두를 경험해보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내 인생이 그저 내 작디 작은 보잘 것 없는 세상에서 끝나지 않기 위해) 나는 순간순간 경험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이야기만 하려는 나 자신을 괴롭혀가며 내가 이해했다고 단정하려 드는 세상을 경험하고 경험하고 또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미와 무의미 역시 내가 규정하고 마는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의 시간을 누적해 오며 만들어진 나의 유한한 모습은 이렇다고 생각한다.
May 23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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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인식하는 그 순간부터 연장전
인생의 계획이나 사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축구 경기의 전반전, 후반전이라는 식으로 비유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멋모르고 살던 시기, 좌충우돌 혼란스럽던 시기는 전반전. 이제 삶의 방향과 목적에 대한 생각이 좀 더 분명해지고, 이미 살아온 삶의 무게도 만만치 않을 때의 새 출발은 후반전. 일면 그럴듯 하고 운치도 있지만, 나는 이 비유가 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전후반전을 나누는 건 누구의 마음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마칠지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삶에 전후반전의 90분을 대입시킬수나 있는걸까? 그래서 굳이 (여전히 운치있는) 축구경기시간과 삶을 비교한 틀 안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 본다면, 이렇게 이야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May 22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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